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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어느 빌더의 위선’과 보디빌딩의 ‘죽음’

등록일 2021.06.03 16:27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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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개근질닷컴 DB


최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 공식홈페이지에 2021년도 금지약물 관련 제재공지가 추가됐다. 공지는 다음과 같다.


<성명: 최대봉, 종목: 보디빌딩, 위반 규정 2.7항, 금지 성분: S2. Peptide Hormones, Growth Factors, Related substances and Mimetics. 처리 결과: 4년 자격 정지(2021-02-08~2025-02-17).>


KADA는 한국의 유일한 스포츠 도핑방지 전담 국가기구다. 민법, 국민체육진흥법에 의해 설립 돼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인가를 받고 운영되고 있다. 


KADA를 통해 금지약물 관련 내용이 적발돼 자격정지를 받을 경우, 그 기간 대한체육회 산하 국내 모든 스포츠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올림픽, 아시안게임, 종별 선수권대회, 전국체전, 각종 국내 보디빌딩대회 역시 당연히 출전할 수 없다. 


미스터코리아 대상과 전국체전 금메달을 수차례 수상한 국내 최고의 헤비급 보디빌더인 최대봉이 향후 4년간 ‘스포츠 보디빌딩 선수’로 활약할 수 없다는 뜻이다. 선수 경력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었던 그는 사실상 ‘강제 은퇴’를 해야 할 처지다.


엘리트 대한보디빌딩에서 이처럼 불명예스럽게 퇴출된 그는 역설적으로 지난해까지 금지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확실한 엘리트 ‘내추럴 빌더’로 꼽혀왔다. 


금지약물의 부작용 징후가 뚜렷하지 않았던 신체 특징, 과다하지 않았던 근육량, 30년이란 오랜 커리어 기간 등이 그를 내추럴이라고 믿게 했던 근거였다. 그러나 무엇보다, 최대봉 스스로가 누차 주장해 온 ‘말의 무게’를 대중들은 깊이 신뢰했다. 


그는 그간 언론, 각종 미디어, 유튜브 채널 등을 통해 “금지약물을 사용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라고 강변해왔다. 심지어 보디빌딩을 하는 아들의 건강까지 언급하며 ‘절대 스테로이드나 성장호르몬을 사용한 적이 없다’며 결백을 ‘주장’해왔다. 필자 또한 최근까지도 그를 굳게 믿고 있었다.

 


사진=한국도핑방지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과학과 의학, 그리고 정황은 다른 ‘사실’을 방증한다. 이번에 금지성분으로 검출된 카테고리는 S2 펩티드호르몬, 성장인자, 관련약물 및 유사제다. 인체의 다양한 조절 기능에 관여하여 경기력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각종 호르몬 및 관련 약물들이 속한 분류로 대표적으로 성장호르몬과 에리스로포이에틴(EPO) 등이 S2에 속한다.


성장호르몬(hGH)은 신체 특정부분 기형화, 당뇨, 관절약화, 심장질환을 일으킬 수 있고, EPO는 고혈압, 뇌졸중, 혈전으로 인한 혈관 폐색 등으로 심할 경우 사망에도 이를 수 있다. 의료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도 극도로 주의해야 하며 사용엔 의료인의 진단이 반드시 필요하다.

 

최대봉이 징계를 받은 내역은 2.7항 ‘금지약물 또는 금지방법의 부정거래 또는 부정거래의 시도’다. 최대봉은 현재 자신의 SNS 게시글 댓글을 통해 ‘직접 사용을 통한 양성반응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양성반응이 나타난 것이 아닌, 과거 금지약물과 관련한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의 결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S2의 성장호르몬 계열 약물들은 금지 약물의 다른 성분과 다르게 실수나 부주의, 실제 의료 목적 등으로 사용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 동시에 경기력과 운동 능력 향상 등엔 금지 약물 중 가장 탁월한 효과가 있어 ‘금지약물의 끝판왕’이기도 하다. 그가 성장호르몬을 사용한 것이 증명되지 않았더라도, 최소한 누군가가 경기력 향상을 위한 목적을 가진 것을 충분히 인지 하거나 의도하고 구입 시도 혹은 중개 또는 거래를 알선했거나, 금지약물의 사용 방법을 교육 또는 거래한 이력이 발견됐다는 뜻이다. 최대봉은 조만간 이런 상황에 대한 입장을 밝히겠다는 댓글을 남기고 있다. 


약물 사용이나 취급 등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평가 할 생각은 없다. 선택도, 부작용도, 결과에 대한 책임도 오롯히 스스로의 몫이다. 다만 ‘한국 보디빌딩의 대들보가 되고 싶다’며 좋은 롤모델을 자처했던 그의 말은 결국 명백한 위선이다. 커리어와 가족을 걸었던 ‘말’은 그의 명예를 반대로 찌르는 칼이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이런 몰락은 일그러진 개인의 불행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보디빌딩이란 스포츠의 시스템과 테두리 안에서 지금도 땀 흘려 노력 중인 엘리트 선수 전체에 대한 대중의 뿌리 깊은 불신으로 확장될 수 있다. 이는 동호인과 팬, 더불어 생활체육으로 뻗어 갈 수 있는 이 업계에 다시 큰 장애물을 갖다놓은 격이다. 


2017년 KADA 도핑 적발 25건의 이름은 모두 보디빌더로 빼곡히 채워졌다. 거슬러 올라가면 보디빌딩은 2008년 8건을 시작으로 매년 두 자릿수 내외의 적발자가 나왔고, 2014년 급기야 한 해 38명이 쏟아진 대표적인 ‘도핑 문제 종목’이었다. 그리고 이는 도핑 적발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기 시작한 2015년 이후 잠시 정체됐다가 2017년 각종 대회 메달리스트들이자 레전드빌더가 대규모로 적발되면서 정점을 찍었다.   


대한체육회는 2017년 당시 1년의 유예 기간을 내걸고 마지막 기회를 줬다. 하지만 보디빌딩은 2018년에도 15명의 적발자를 배출했고, 결국 2019년부터 전국체전 시범경기로 강등됐다. 


대보협 내부적으로 위기를 인지하고 이후 자성에 나서자, 자의반 타의반으로 적발 횟수는 현저히 줄었다. 2019년 전국체전에선 단 1명의 도핑 적발자도 나오지 않았고, 2020년 대보협 산하 선수 가운데 적발자가 4명으로 줄어드는 등 확실한 자정의 기운도 읽혔다. 


시류도 탔다. 수많은 보디빌더들이 요즘 MZ세대들에게 더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와 유튜버로 영역을 확대했고, 헬스 및 건강 관련 유튜버들 역시 소위 말하는 대세다.  


많은 레전드들이 사라진 가운데 최대봉은 ‘새로운 시대’에도 여전한 ‘클래식’이자 ‘베스트’로 대중에게 다가가던 존재였다. 국가대표 보디빌더로 스스로를 ‘브랜딩’했던 한 보디빌더 겸 유튜버 역시 도핑 경력이 ‘아웃팅’ 되기 전까지 엘리트 보디빌딩을 상징했다. 수십년간 누적된 불신이 옅어지는 시기였단 뜻이다. 그러나 이번에 최대봉을 비롯해 보디피트니스 국가대표 출신 여성 보디빌더였던 이와 서울권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남성 보디빌더까지 총 3명이 다시 금지약물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다.

 

엘리트 보디빌딩에 한정하지 않으면, 보디빌딩&피트니스계에 도핑은 만연해 있다. 금지약물 적발을 하지 않고, 최고의 경기력만을 최선의 대상으로 평가하는 각종 사설 단체 및 IFBB PRO리그 산하 대회엔 여전히 금지약물을 사용 중인 이들이 있다. 


약물 복용의 위법성을 논외로 하고, 시스템의 타당성을 살펴봤을 땐 해당 단체들의 룰에서 도핑은 불법이 아니다. 그들은 애초에 ‘스포츠’가 아닌 경연으로의 무대에서 겨루는 ‘쇼&엔터테인먼트’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로의 보디빌딩은 다르다. 공정 경쟁은 스포츠의 근간이자 존재 이유다. 그 공정을 한참 벗어난 위선이 또 한 번 대중 앞에 벌거 벗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스포츠로서의 한국보디빌딩의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비극이다.


보디빌딩이 미래에도 여전히 스포츠의 한 장르로 대중의 곁에 남고 싶다면 적어도 ‘대한보디빌딩협회’와 관련한 보디빌딩의 갈래는 이제라도 완전히 ‘금지약물’과 작별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반대로 스포츠와 작별하는 방법 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약물을 철폐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보는 견해는 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금지약물을 막을 수 있는 명명백백하게 대중에 공개된 시스템이 없다면, 앞으로도 일어날 불법을 막을 수 없다면, 미래 역시 없다. 


공정과 진실을 대중에게 다시 증명하지 못하는 스포츠 보디빌딩은 끝내 ‘우물’ 안으로 갇힌 존재로 전락할 뿐이다.


시대는 ‘진실’을 원한다. 그리고 그 진실은 보디빌딩의 죽음을 막는 유일한 길이다. 베테랑 빌더의 추락이 알려준 유일한 교훈이다.


개근질닷컴 김원익 편집장
 

김원익 (one.2@foodnamoo.com) 기자 
<저작권자(c) 개근질닷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등록 2021-06-03 16:2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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