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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조삼모사(朝三暮四) 코로나 방역 정책

등록일 2021.01.07 17:54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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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 사람 저공은 어느날 원숭이들을 모아놓고 말했다.

 

“이제부터는 도토리를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씩 주겠다.” 원숭이들은 모두 반발했다. 그러자 저공은 할 수 없다는 듯 “그럼 아침에 네 개, 저녁에 세 개를 주겠다”고 했다. 이에 원숭이들은 좋아하며 환호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정부는 각종시설 방역 정책과 관련자 생존권을 ‘집합’과 ‘금지’로 쥐락펴락했다. 어느때엔 되고, 어느때는 안 되고, 어디는 가능하지만, 또 어디는 불가능한 일의 반복이다. 그리고 이젠 네 사람은 되는데 다섯 사람은 되지 않게 됐다.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할 수 없는 사람인지 헷갈리는 지경이다.

 

코로나19란 미증유의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일관된 정책과 집행은 필수다. 그리고 이는 ‘K방역’이란 분명한 성과로도 나타났다. 하지만 지난 11월부터 본격 시작한 2차 대유행 이후의 과정은 방심 이후 실기의 연속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그리고 그 과정을 보며 조삼모사(朝三暮四) 속 사람의 손을 하염없이 지켜만 보는 원숭이들이 떠오른다.

 

혹자는 공무원의 묘(妙)는 보신과 모면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고난의 상황에서 국가란 시스템의 존재와 그 울타리에서 헌신하는 많은 진짜 ‘일꾼’들을 지켜보기도 했다. 몇 차례 대상과 범위를 두고 오락가락한 거리두기 단계 조정 및 방역정책이 어느덧 많은 국민에게 불신을 드리웠음에도 대다수가 이를 따르고 있는 한 가지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시 불식간에 의심이 자란다. 현상은 같거나 더 나빠졌는데 방역지침의 강도는 1단계에서 3단계로 높아졌다가, 되레 낮아졌다 높아졌다를 반복했다. 이에 따라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와 불편함, 생업의 어려움과 발병에 대한 공포도 함께 커졌다.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단계’와 ‘강도’ 또는 ‘대책’이 신뢰를 주긴 어렵다.

 

그리고 새해에도 고난은 현재진행형이다. 사실 그렇지 않았다. 지난 한해가 어쨌든 시작은 거의 늘 희망을 품고 고대했던 게 과거였다. 그랬던 시작이 올해는 두렵고 물음표가 더 크다.

 

아마 많은 이가 그럴 것이다. 미증유의 재난을 맞은 국민 모두의 어려움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각 개인의 지극한 불행과 고통이다. 그 중에도 일터를 잃은 이들이 현재 겪을 고난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파열의 지점이 너무나 명확하다. 당장 최소 6주 이상, 길게는 수개월에서 1년여 간 운영의 어려움을 겪은 자영업자들은 생존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일과 버틸 수 없는 일이 있다.


다시 돌아와 조삼모사 속 원숭이들은 스스로 아침과 저녁을 먹는 일조차 결정할 수 없기에 끝내 슬픈 존재다. 현혹의 수가 잠깐의 정신적 허기는 달랠 수 있지만 배고파 주린 내 배를 불려 줄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정부는 8일부터 영업금지 조치를 내렸던 모든 실내체육시설에 대해 동시간대 사용 인원을 9명으로 제한하는 조건의 운영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대상을 ‘아동·청소년 대상 교습목적’으로 한정해 다시 한 번 많은 자영업자와 시설 이용을 고대했던 이들에게 깊은 실망감을 줬다. 극히 일부 시설을 제외한 대다수의 실내체육시설엔 실효성이 없다. 실제 운영자와 이용자들이 누락된 정치적인 결정이다. 또 타 업종은 모두 조정안에서 다시 제외됐다. 반발이 큰 이들을 대상으로 보여주기식으로 꺼내 든 행정편의주의나 탁상행정의 결과란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방역당국을 조율하고 정책 결정을 행하는 입장의 각 정부부처는 어디까지나 대변하는 이들일뿐 전능한 자들이 아니다. 각계 각층의 이야기와 조언을 청취하고 연구하고 숙고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러나 기껏 고민한 결과가 ‘돌봄 기능 보완’이란 애초의 자의적인 판단 기준에만 다시 맴돈다면, 이는 일부 결정권자들의 고집 혹은 국민을 원숭이로 폄훼하는 기만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는다.

 

‘추적’과 ‘격리’ 그리고 치료는 성공한 모델이고 가치다. 또한 국민들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선 ‘안전’을 향한 각자의 노력 혹은 희생은 우리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귀중한 밀알이다. 그러나 간과해선 안되는 일이 있다. 국민들 모두는 행복하고 안전하게 각자의 생존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점이다.

 

김훈 작가는 한겨레신문에서 연재한 ‘거리의 칼럼’ 홍수편(2020년 8월 9일자)에서 이렇게 썼다.

 

“재난을 객관화해서 떼어내려는 마음의 충동은 결국 그 마음을 폐허로 만든다는 것은 한참 더 자라서 알게 되었다.”

 

코로나19란 재난의 불가항력에서 우리 모두는 무력하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내 눈 앞에 벌어진 일은 나와 무관하다’거나. 무력한 나 자신을 억지로 납득시키며 버틴 마음들은 훗날 더 깊은 아픔으로 돌아온다. 깊은 절망에 빠진 이를 일으켜세우고 보듬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 믿는다.

 

우린 재난 앞에 서 있다. 그 문 앞에서 고통에 빠진 이의 기약 없는 기다림을, 거짓 희망으로 호도하는 건 사기다. 현재의 고통과 인내는 분명한 희망이 있을때만 가끔 유효하다.

 

개근질닷컴 김원익 편집장

김원익 (one.2@foodnamoo.com) 기자 
<저작권자(c) 개근질닷컴,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사등록 2021-01-07 17:5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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