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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준호의 Hustle] ‘의족을 찬’ IFBB 프로, 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등록일 2019.10.21 00:00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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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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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근질닷컴] 현역 IFBB 프로인 에드가드는 4살에 두 다리를 잃었다.

한창 걷고 싶고, 뛰고 싶을 나이 4살. 하지만 당시 에드가드 존 어거스틴은 직접 두 발로 뛰어가 부모님 품에 안길 수 없었다.

에드가드는 4살이 되던 해 고속도로에서 큰 사고를 당했다. 그야말로 비극이었다. 옆자리에 타고 있던 형은 한쪽 다리를 잘라야 했고, 에드가드는 두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다.

살아있는 것이 기적일 정도로 출혈이 상당했다. 그의 어머니는 다행히 손가락 골절로 끝났지만, 자식들의 장애가 당신의 잘못이라는 정신적 충격이 더 컸다. 그녀의 죄책감은 말로 헤아릴 수 없었다.

이런 어머니를 위해서였을까? 4살의 에드가드는 재활을 곧잘 견뎌냈다. 다만 그가 걸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의족’뿐이었다. 자신의 다리가 아닌 의족으로 걷기 위해선, 지금껏 가지고 있던 균형감각을 버려야만 했다. 그렇게 에드가드는 평행바를 딛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를 향한 걸음을 뗐다.

어느덧 재활센터에서 걷는 훈련을 마친 에드가드는 학교에 입학했다. 남들과 다른 그의 다리는 역시나 큰 놀림거리였다. 주변에선 그를 ‘로봇다리’라고 불렀다.

“친구들이 놀릴 땐 상처받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두 다리가 있던 삶이 기억나지 않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 크게 힘들진 않았다”


▲ 사진=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인스타그램

인생을 바꾼 사진 한 장

의족은 에드가드의 능력을 증명하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에드가보다 빠른 학생이 없었다. 타고난 운동신경과 대퇴 근육이 남달랐던 것이다.

에드가드는 고등학교 졸업 후 파리로 건너가 공부를 시작했다. 이후 에드가드는이따금씩 찾아오는 학업 스트레스를 피할 탈출구로 웨이트에 발을 들였다.

“학업 스트레스를 피할 그늘이 필요했다. 처음엔 다른 보디빌더들처럼 큰 이두근과 복근을 목표로 운동하지 않았다. 그저 운동을 할 때 내 몸과 정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

남다른 운동신경 덕이였을까. 날이 갈수록 에드가드의 몸은 완벽해졌다. 하루는 그의 신체 균형미를 높이 산 사진작가가 자신의 모델이 되어 줄 수 있냐는 제안을 했다. 그리 달가운 제안은 아니었다. 에드가드는 평소에 긴 바지로 의족을 가리고 다녔다. 가족과 가까운 몇 명의 친구 외엔 의족의 정체를 모르게 살았다. 그만큼 다리는 그에게 사적인 부위였다. 하지만 사진작가의 설득과 긴 고민 끝에 모델 제안을 수락했다.


▲ 그의 인생을 바꾼 사진. 사진=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인스타그램

결과물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사진작가가 페이스북에 사진을 공유하자 많은 이들이 ‘좋아요’와 함께 극찬이 잇따랐다. 에드가드의 지난 고민과 걱정이 씻은 듯이 날아가는 순간이었다. 이와 동시에 에드가드는 더 이상 자신의 의족을 숨길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에드가드의 보디빌딩 도전기


▲ 사진=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인스타그램

그 사진은 큰 변화를 가져왔다. 각종 회사에서 앞 다퉈 스폰서를 제안했다. 실제로 그의 몸은 ‘의족’이라는 타이틀을 빼고도 이런 대우가 어색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아름다웠다.

에드가드는 운동을 하면서도 딱히 보디빌딩에 대한 도전은 꿈꾸지 않았다. 먼저 경쟁을 하기 위해선 바지를 벗어야 했다. 그는 의족이 치부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는 달라졌다. 자신이 누군가에겐 큰 동기부여가, 또 누군가에겐 귀감이 된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그는 ‘누군가’를 위해 2014년 9월 생애 첫 보디빌딩 대회 출전을 위한 예열을 시작한다.

물론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프랑스엔 그가 출전할 마땅한 대회가 없었다. 당시엔 프랑스까지 휠체어 보디빌딩 대회 저변이 미국만큼 확대되지 않았었다. 에드가드는 결국 ‘Grand Prix’ 대표에게 일반 선수들과 무대에 같이 뛸 수 있게 기회를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대회 측은 대신 심사를 하지 않겠다는 답변과 함께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겠단 조건으로 그의 참가를 수락했다.


▲ 사진=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인스타그램

“비장애인 선수들과 무대 경험은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어떠한 것으로도 가치를 매길 수 없다”

그의 무대를 본 프랑스 보디빌딩 국가대표 코치는 3주 뒤에 스페인에서 열리는 ‘European Championships IFBB Wheelchair Bodybuilding’ 출전을 제안했다.

결과는, 적수가 없었다. 세퍼레이션, 근육 매스, 데피니션까지 압도적인 컨디셔닝이었다. 2015년 5월, 에드가드는 보란듯이 대회 챔피언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 어느덧 생긴 가족. 사진=에드가드 존 어거스틴 인스타그램

현재 에드가드의 도전을 보기 위한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어느덧 35만 명을 넘어섰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다리가 누군가에겐 큰 동기부여가 되었음을 알기에, 그는 더 이상 다리를 가리지 않는다. 팬들을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그의 아름다운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허준호 (hur.jh@foodnamoo.com)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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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9-10-21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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