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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 인 더 올림피아6] ‘그림자’ 도리안 예이츠, 벌크업의 포문을 열다

등록일 2019.08.05 17:34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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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비급에서 찾아보기 힘든 데피니션. 사진=구글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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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근질닷컴] 한 매체가 물었다. “도리안 예이츠, 당신은 전성기때 일 년에 한 번 정도만 대회에 출전한 이유가 있나요?”


“난 세계 최고였기에 나 자신을 꾸준히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내 모든 힘을 한 대회에만 집중해서 쏟아 부었을 때 최고의 결과가 나온다. 그 무대가 바로 ‘올림피아’다”

도리안 예이츠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총 6개의 올림피아 트로피를 거머쥔 레전드 보디빌더다. 부상으로 최강의 자리에서 내려오기 전까지, 누구도 그를 끌어내릴 수 없었다. 특히 도리안은 현 보디빌더들에게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이유는 헤비급 근육 매스를 더 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리트 선수로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 같은 도리안 예이츠도 암울했던 과거는 있었다.


▲ 지상 최강 등 근질. 사진=구글 커뮤니티


소년원-악행을 일삼다

도리안의 어린 시절은 질풍노도 시기 그 자체였다. 영국 헐리에서 태어난 그는 1980년 16살이 되던 해 버밍엄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스킨헤드 조직(Skinhead gang)에 가입 후 각종 악행을 일삼았다. 그는 결국 19살때 6개월간 소년원에 들어갔다.

소년원에서 ‘타고난 체격과 힘을 가진 소년’으로 명성을 얻었던 도리안은 자신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파워리프팅을 시작했다. 그리고 도리안은 남들보다 근육이 더 빨리 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보디빌딩으로서 잠재력을 눈치챈 이 소년은 출소 후 건달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체육관을 찾아갔다.


▲ 1983년 도리안. 도리안 인생에서 가장 인간적인 시절. 사진=구글 커뮤니티


“보디빌딩을 시작하고 공부를 시작했을 때 1980년부터 85년까지 보디빌딩에 관한 모든 출판 서적을 다 읽었다. 그리고 목표를 세웠다. 처음 한 달은 같은 무게로 벤치프레스를 하고 그 다음 달은 5kg을 올렸다. 다시 다음 달엔 5kg을 추가. 결국 연말에 55 kg를 늘리겠다는 것이 목표였다”

수면위로 올라오다

1985년 7월 20일 모어캠브에서 영국 서부지방 챔피언십(England’s West Coast)이 열렸다. 도리안 예이츠는 이 대회를 자신의 첫 번째 대회로 결정하고 무대에 올랐다.

무대에 오른 도리안을 보면서 영국보디빌딩협회장 론 데이비스(Ron Davies)는 외쳤다. “너는 어디서 온 누구지? 아니, 대체 왜 이 경기장에 있는 거야?”

이에 도리아는 대답했다. “저는 버밍엄에서 온 도리안 예이츠라고 해요. 이번이 첫 번째 경기입니다”.

론 데이비스는 그의 말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너는 헤비급 경기에 참여해야 할 것 같다. 아마 너는 지금 현재 이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헤비급 보디빌더인 것 같구나”라고 말했다.

사실 첫 대회 참가했던 도리안은 자신이 아직 헤비급에 참가할 역량이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회에 영국보디빌딩협회장 론 데이비스는 그의 잠재력을 단번에 알아보고 한 주 뒤에 열린 월드 게임즈(World Games)에 도리안을 초청했다.


▲ 1988 도리안. 사진=구글 커뮤니티


도리안은 월드 게임즈에서 7등을 기록했고 이듬해 1986년 더 좋아진 기량으로 브리티시 챔피언십 헤비급 1위를 차지한다. 그리고 2년 뒤 1988년 절정의 기량으로 같은 대회 오버롤을 거머쥔다.

“처음부터 미스터 올림피아를 꿈꾸지 않았다. 단계적으로 계획을 세웠다. 처음엔 브리티시 챔피언, 프로 카드 그리고 미스터 올림피아”

도리안 예이츠가 그림자가 된 이유


▲ 1990 도리안. 사진=구글 커뮤니티


도리안은 브리티시 챔피언십 이후 프로 카드를 얻었다. 그리고 1990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스터 올림피아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미국에서 첫 대회는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Night of Champions)였다. 처음 그를 본 미국인들은 외국에서 온 신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무대에 선 순간 야유는 감탄으로 바뀌었다.

누가 봐도 도리안이 1등이었다. 아니, 1등이었어야 했다. 도리안은 자신이 그 대회에서 가장 몸이 좋았기에 트로피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2등이었다.

“해외 진출 후 첫 번째 대회에서 심사위원들은 내가 아닌 자신들이 알거나 친한 보디빌더에게 더 높은 점수를 줬다. 분명히 그랬다.”

심사위원의 판정에 회의를 느낀 도리안 예이츠는 이때부터 더 악착같이 운동에 전념했다. 대회 당일 빼곤 체육관에만 있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그림자(The Shadow)’라고 불렀다.

이듬해 도리안은 더 완벽해진 모습으로 같은 나이트 오브 챔피언스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보란 듯이 트로피를 들어 올렸고, 올림피아 무대에 설 수 있는 자격을 거머쥐었다.

미스터 올림피아-전설의 시작


▲ 1991 세기의 대결 리 헤이니(왼쪽), 도리안 예이츠(오른쪽). 사진=구글 커뮤니티


1991년, 도리안 예이츠의 첫 미스터 올림피아 도전이 시작됐다. 그가 경쟁했어야 했던 상대는 *리 헤이니. 1984년부터 단 한 번도 올림피아의 자리를 내줘본 적 없는 역대 최고의 재능을 지닌 자와의 대결이었다.

이때 도리안은 분명 정점의 기량을 지니고 있었지만, 리헤이니의 ‘경험’에 밀리며 2위를 기록했다.

향후 각종 매체는 이 둘의 대결을 ‘올림피아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라고 표현했을 만큼 둘의 대결은 대단했다.

리 헤이니는 당시 경기를 회상하면서 “처음 도리안을 봤을 때 살면서 본적 없는 괴물이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그때 내가 질 것 같다는 의심은 해 본적 없지만, 그렇다고 다시 붙고 싶진 않았다”고 말했다.

이 경기 이후 리 헤이니는 미스터 올림피아 무대를 은퇴했고, 도리안 예이츠는 이때의 패배 말곤 단 한번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도리안은 1992 미스터 올림피아를 시작으로 1997년까지 6년 동안 챔피언 자리를 지켰다. 그야말로 적수가 없었다.

벌크업의 포문을 열다


▲ 1995 도리안. 사진=구글 커뮤니티


도리안 예이츠가 현 보디빌딩 벌크업에 포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3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역대 헤비급에선 볼 수 없었던 데피니션과 매스로 대회 무대를 압도했다.

“1993년 대회에서 기존 매스보다 더 늘려서 남들이 본적이 없는 최강의 헤비급 보디빌더가 됐다. 나 보다 큰 사람은 있었겠지만, 세퍼레이션과 데피니션이 나보다 좋을 순 없었다. 이기기 위한 보디빌더의 필수요소는 ‘세퍼레이션, 데피니션, 매스, 컨디셔닝’ 이 네 가지다”

전문가들은 ‘현재 이상적인 보디빌더는 도리안 예이츠가 기준이 되었다’고 말한다.

도리안 예이츠가 이런 몸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은 HIT(High Intensity Training), 고강도 훈련 덕분이었다. 가장 무거운 무게로 1~3세트만 짧고 굵게 하고 끝내는 이 훈련법은 지금도 많은 선수가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고강도 훈련이 너무 과했던 나머지 결국 크게 다친다. 고강도 훈련법으로 세계 최고가 됐지만, 결과적으로 독이 돼버렸다.


▲ 1997 도리안. 부상당한 팔이라니 믿어지지 않는다. 사진=구글 커뮤니티


도리안은 고강도 훈련 도중 1997년 삼두근이 힘줄 95%가 근육에서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훈련을 멈추지 않았고, 얼음을 근육에 갖다 대면서 경기 준비를 했다.

다행히 1997년 미스터 올림피아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이두근과 삼두근에 큰 부상을 입고 은퇴를 선언한다.

동시대 올림피아 무대에 섰던 도리안의 라이벌 숀 레이“도리안 예이츠가 휠체어를 타고 무대에 올라와도 올림피아는 따 놓은 당상이다”라고 말했다.
*숀 레이
1995 Mr. Olympia – 4th Place
1996 Mr. Olympia – 2nd Place
1997 Mr. Olympia – 3rd Place 등

리 헤이니에 이어 6년간 올림피아 무대를 지켰던 도리안은 아쉽게도 부상으로 더 이상의 올림피아 도전은 하지 못했다.


▲ 지금도 후배 양성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사진=구글 커뮤니티


하지만 지금도 보디빌딩 제품 사업과 헬스장을 운영하며 많은 후배 양성을 위해 솔선수범 노력하고 있다.

헤비급의 한 단계 발전을 이룬 도리안 예이츠. 이 때문에 아직도 많은 보디빌더가 그의 운동법을 찾아보는 것이 아닐까?


허준호 기자(hur.jh@foodnamoo.com)




개근질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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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9-08-05 17: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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