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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hamp] 류제형 “‘제2의 류제형’은 꾸준함이 길이다”②

등록일 2019.03.18 16:08 youtube 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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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이일영 기자

[개근질닷컴] “’제2의 류제형’을 꿈꾼다면 꾸준함이 길이다.”

류제형은 지난해 11월 9일부터 13일(한국시간)까지 스페인 알리칸테에서 열린 제13회 세계남자클래식보디빌딩선수권대회 클래식 보디빌딩 종목 -175cm 체급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7년 세계선수권 금메달과 통합 오버롤에는 미치지 못한 성적이었지만 심각한 허리 부상을 이겨낸 ‘금메달만큼’ 값진 은메달이었다.

오랜 기간 꾸준하고 성실하게, 챔피언의 길을 걷고 있는 류제형을 <개근질닷컴>이 만났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 사진=이일영 기자

2018년을 결산한다면

2018년은 무난했던 한해였던 것 같다. 운동이나 수상 결과나 말이다. 운동적인 면만 놓고 보면 2018년은 고통의 역치가 많이 올라갔다. 의사분께선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

'감각이 많이 둔해진 것 같다’고(웃음). 그래서 ‘덜 아프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이다. 대신 허리부상 이전에 어깨 탈구로 고생을 많이 했는데 그건 많이 좋아졌다.

트레이드마크인 ‘칼데피’ 하체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까

평소 스쿼트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체 운동을 할 때 꼭 빼놓지 않는 편이다. 비결은 따로 없다. 개인적인 욕심에선 지난해는 이전에 비해선 부족한 느낌이 많았다.

그렇다면 지난해 전체적인 근질의 만족도는 어느정도였나

나의 몸 상태나 환경에 비춰보면 90%까진 끌어올렸던 것 같다.

그렇기에 더 아쉬운 지난해 세계선수권 당시 부상이다. ‘만약 경기 직전에 부상이 없었다면’이란 가정은 해본 적 없나

(단호하게) 더 좋은 성적이 났을 것 같진 않다. 대회를 준비하면서 최선의 노력을 했고 최고의 결과를 가지고 무대에 올랐다. 금메달을 따지 못 한 아쉬움은 있지만 통증이 온 상황을 두고 아쉬워하는 마음은 크지 않다.

‘공인 7단’ 무술 청년, 보디빌딩에 빠지다 


▲ 사진=이일영 기자

어떻게 보디빌딩에 입문하게 됐나. 각종 무술과 격투술 유단자인 것으로 안다.

대학교까지 그런 운동을 주로 했는데 당시에 태권도 2단, 유도 2단, 용무도 3단까지 총 7단 정도를 땄다.

7단?

더 거슬러 올라가면 초등학교때부터 합기도를 했다. 그때 웨이트트레이닝을 처음 해봤는데, 당시엔 합기도를 잘 하고 싶었기 때문에 근육통이 오는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보디빌딩에 빠진 건 대학교때부터였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처음으로 헬스장을 가본 이후 그 후론 근력 운동은 빼먹지 않고 했다. 오히려 전공수업은 빠져도 웨이트트레이닝은 꼭 했던 것 같다(웃음).

전공이 뭐였나

조금 복잡하다. 지금은 용인대학교는 동양무예학과와 격기지도학과로 나눠져 있는데 당시에 동양무예학부에서 합기도학과가 있었다. 그때 마침 교과과정이 학부제로 통합되면서 세 달 전부터 ‘입시체육’을 따로 준비해서 들어갔다. 그런데 군대를 다녀오니 합기도가 용무도로 바뀌었다. 각 무술의 장점을 통합해서 만든 것이 용무도인데, 최종적으론 용무도학과를 다닌 셈이다.

보디빌딩에 빠진 걸 학교에선 썩 좋아하지 않았겠다

(웃으며) 용무도학과 학생들은 전국체전, 소년체전 등 지역 대회에 의무적으로 심판을 보러 가야 한다. 그런데 난 ‘MR.서울 보디빌딩선발대회’ 출전을 이유로 참석할 수 없다는 사유서를 써내곤 했다. 마지막엔 졸업을 못 할 뻔했다(웃음).

용무도와 보디빌딩은 완전히 다른 운동일 수도 있는데

몸을 만드는 것 자체에 매력을 느꼈다. 입대 전에도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지만 웨이트트레이닝은 빼놓지 않고 했었다. 술 약속 전이나, 그러면 안 되지만 음주 이후에도 운동했을 정도였다. 월~금은 열심히 운동하고 토,일은 뻗어 있는 생활을 복학 이후 1년 정도까지 했다. 그렇게 조금 방황했지만 결국엔 이 길로 왔다.

?

이렇게 내가 좋아하는 운동인데, 뭐라도 남아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대회에 나간 거다. 사진 한 장, 트로피 하나라도 남겨 놓고 싶어서. 그렇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 사진=이일영 기자

본인이 목표한 것에 대해선 쉽게 포기하지 않는 편인 것 같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많은 도움을 주신 선생님이 계셨다. 제대 이후 선수 생활을 해야 할까 고민이 많았던 시기가 있어서 그분께 조언을 구했었다. 

그때 ‘그걸 뭐하러 계속 하냐, 그것만 하고 살 수 있겠냐. 내 친구도 지금은 다른 일을 한다’며 굉장히 강하게 말리시더라. 나를 위한 조언이었지만 그땐 어린 마음에 큰 상처가 됐다.

한창 꿈을 꾸고 있던 청년 입장에선 그럴 수 있었겠다. 그런데?

그때 이후 죄송하게도 그분을 찾아 뵙지 않게 됐다. 하지만 포기하고 싶어지진 않았다.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 그래서 쭉 했다. 오히려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보디빌딩을 좋아하는 이유는 뭔가

(담담하게)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정직한 운동이니까. 스스로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면, 그게 성적이랑 바로 연결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지만 말이다.

‘제2의 류제형’을 꿈꾸는 선수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제2의 류제형’이란 말은 결국 국가대표를 꿈꾸는 선수들일 거다.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건 올바른 방향으로의 꾸준함.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꾸준하게만 한다면 시간이 걸릴지라도 언젠가는 빛을 볼 수 있는 운동이란 걸 말해주고 싶다.

오랜 팬들이 많다

레슨을 받으러 오는 분들을 보면 예전 '싸이월드'시절부터 쭉 지켜봐왔단 말을 하시는 분들도 있더라(웃음). 고맙고, 놀라운 마음도 크다. 그만큼 오랜 기간 응원해주셨단 말이니까. 오랫동안 연락해주시는 분들이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

가족들에겐 어떤 가장인가

아들이 올해 9살이다. 아무래도 다른 아빠들처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다.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 그리고 함께해야 하는 시기를 같이 보내지 못한 것에 늘 미안한 마음이 있다. 그런데도 참 착하게 잘 자라줘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아들과 사이가 좋은 편인 것 같다

(웃으며) 나를 많이 좋아하고 따른다. ‘아빠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하곤 한다.

혹시 아들이 보디빌더가 된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겠나?

(곧바로) 재능이 보인다면? 괜찮은 것 같다. 물론 그 당시 상황은 어떻게 될 지 모르겠지만. 이 운동은 선수를 하든 안 하든, 좋은 것이니까 재능을 떠나 하고 싶다고 하면 시킬 것 같다.


▲ 7체급 제패의 전설 이진호는 류제형의 든든한 스승이다. 사진=개근질닷컴 DB

선수 생활을 하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을 꼽는다면

스승님인 이진호 선수다. 과거 동네 몸짱이었던 시절에 처음 만났다. 제대 이후 대회를 나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고등부 선수였던 군대 시절 후임 소개로 미아리에 있던 ‘노우현 체육관’을 찾아갔다. 거기서 스승님이 스쿼트를 하고 있는 걸 처음 봤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충격?

듣도보지도 못한 무게를 편안하게 들고 앉았다 일어섰다를 하는 거다. 그걸 보고 나서 진짜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뭐지’ 싶었다. 어떻게 보면 그냥 ‘뚱뚱한 사람’인데(웃음) 나중엔 엄청난 선수라는 걸 알게 됐다.

이후엔 어떻게 인연이 생겼나

자연스럽게 친해지면서 자세도 지도 받고, 포징도 배웠다. 그때 스승님께서 본격적으로 선수로 뛰어보란 권유를 많이 했다. 그리고 어느날 ‘부산으로 내려올래’라고 권유하시길래 그 말에 바로 짐을 싸서 부산에 내려갔다.

부산으로?

그렇다. 그게 2006년이었는데 다음해인 2007년까지 부산에서 생활하면서 부산, 경남 대회를 나갔다. 실업팀을 목표로 지역까지 옮겼는데 현실은 쉽지 않더라. 그러다 힘이 빠진 계기가 있었는데.

?

2007년 Mr.경남 선발대회에서 종합 2위인 ‘근육상’을 했다. 당시 그랑프리 선수에겐 미안하지만 판정이 이해가 가질 않았다. 다른 이들의 의견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갑자기 이름도 없는 선수가 나타났으니 그랑프리는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길 들었지만 기분이 나아지질 않았다.


▲ 사진=이일영 기자

그리고 비슷한 상황에서 또 몇 번을 미끄러지니까 힘에 부쳤다. 결국엔 서울로 올라가서 체육관을 하면서 몇 년 간 운동을 쉬었다. 당시 스승님이 누구보다 많이, 굉장히 안타까워했다.

마음을 돌릴 생각은 하지 않았나

당시엔 내가 너무 힘들었다. 수입도 변변하지 않은 상태인데, 연고도 없는 부산에서 선수 활동을 하려니 쉬웠겠나. 그러다 2010년 스승님의 권유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클래식보디빌딩 국가대표를 목표로 잡고 선수로 복귀했다. 이후엔 쭉 대회에 나가고 있다. 이 운동에서뿐만 아니라 인생에서도 ‘참 존경한다’는 말을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분이다.

끝으로 다시 태어난다면 만약 이 운동을 할 건가

딱 반-반이다. 지금도 드는 생각이 있다. 매해 느끼는 것, 배우는 것이 또 다르다. 그래서 ‘아 이 운동은 평생을 두고 해도 다 깨닫지 못하겠구나’란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니까 다시 태어난다면 ‘과거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더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겠구나’란 생각이 든다. 반대론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너무 많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삶을 살아봐도 괜찮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김원익 기자(one.2@foodnamoo.com)
개근질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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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9-03-18 16: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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