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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임태송 “마이클 잭슨처럼 혼을 바쳐서”②
개근질닷컴| 등록2018-12-07 16:27| 수정2018-12-10 17:45 facebook twitter

▲ 보디빌딩 전문사회자 임태송은 이 스포츠를 향한 뜨거운 애정과 단단한 사회자의 철학을 바탕으로 ‘즐거운 무대’를 운영한다. 사진=이일영 기자

[개근질닷컴]

한국의 사회자 송해와 미국 메이저리그 해설자 빈 스컬리는 만 91세로 나이가 같다. 한국과 미국을 대표하는 이 목소리는 오랜 기간 시청자들의 귀를 즐겁게 했다.

그 가운데 미국의 빈 스컬리가 올해 67년 연속 LA 다저스 중계를 끝으로 마이크를 내려놨다. 그러자 미국 야구계는 물론 세계적으로 그에 대한 존경이 쏟아졌다.

이처럼 오랜 기간 변함 없이 한 장소를 지키는 이들에게 이제 대중은 친숙함을 넘어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보내곤 한다.

보디빌딩&피트니스 대회에도 이런 이가 있다. 보디빌딩의 목소리, 보디빌딩 전문사회자 임태송을 개근질닷컴이 만났다.

<[휴먼스토리] 임태송, 보디빌딩 전문사회자 외길 10년①>에서 이어집니다.

운동과 예술을 좋아했던 소년, 마이크를 잡다

▲ 1980년대 유명 DJ로 활약한 경험은 지금 풍성한 무대를 채우는 원동력이다. 사진=이일영 기자

처음으로 마이크를 잡은 계기는 뭐였나

꾸준히 대중문화에 관심을 두고 외국 음악을 즐겨 듣다가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치 않은 기회로 DJ를 하게 됐다.

고3 때?

(웃으며) 졸업을 앞두고 드디어 머리도 기르니 어른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두천 인근에 미군 기지가 많았는데 거기 클럽에 나가는 보조 DJ였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배우는 요즘 표현으론 인턴이었던 셈이다.

신세계였겠다

(고개를 끄덕이며) 평소 라디오나 외국 방송을 통해 즐겨 듣던 음악을 LP 테이블에 직접 올려 틀면서 얼마나 신났겠나. 백인, 흑인, 그리고 황인종인 나까지 음악 앞에선 인종 구분 없이 하나가 되더라. 자유롭게 음악을 공유하고, 그들이 요청하는 음악을 틀어주면서 느낀 희열 덕분에 자연스레 DJ란 길을 걷게 됐다.

청소년기의 열망은 성인이 되고 난 이후 현실의 벽에 부딪혀 꺾이기도 하지 않나


아니다. 난 반대였다.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 오히려 본격적으로 직업 DJ를 시작했다. 당시엔 DJ가 굉장한 선망의 대상이었고 마치 연예인과 같이 여겨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아버지 뒤를 이어 의대 계통을 가지 못 하고 음악을 하게 됐으니, 당시만 해도 ‘딴따라’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속으론 ‘나는 아버지가 가진 예술가의 DNA만 물려 받았나보다’란 생각을 하곤 했었다.

직설적으로 물어보겠다. DJ론 소위 말해서 ‘잘 나가는’ 편이었나

스물일곱이란 나이에 결혼을 했고, 스물여덟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그리고 첫 아이가 태어난 그 해에 음악감상실의 주인이 됐다.

1980년대임을 고려하면 정말 굉장히 빨리 성공을 한 편이다

고등학교때부터 마이크를 잡았으니 두려움이 없었다. 전국의 음악다방, 감상실에 원정을 다녔다. 장소마다 다르지만 어떤 곳은 150평 정도 되는 곳에 콩나물 시루처럼 사람이 꽉 차 있었는데 그곳 메인 DJ를 서곤 했었으니까. 내 자랑 같아 부끄럽지만 스카우트도 많이 받았다(웃음).

스카우트?

국내 유명 음악감상실에서 다 DJ를 맡아봤다. 지금도 가수들이 행사를 뛰면 전국의 업소와 행사장을 다니듯 원정 순회 공연을 한 거다. 당시만 해도 DJ가 손님을 끌어 모으는 척도였기 때문에 경쟁 업체끼리 서로 웃돈을 얹어서 데려 가려 할 정도로 인기가 있어서 이른 시기에 빨리 내 가게를 가지게 됐다.

사업 외길에서 벗어나니 인생이 다시 보였다


▲ 30,40대를 성공한 사업가로 여러 사업체를 운영했던 임태송은 50대부터 다른 길에 뛰어들었다. 사진=이일영 기자

결혼과 사업 성공, 그 후 인생이 탄탄대로였겠다

자꾸 그쪽 얘기와 연결돼서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음악감상실을 포함해서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했다. 피트니스 센터, 레스토랑, 찜질방 등 정말 다양한 업종의 사업을 하고 기반을 잡게 되면서 30대부터 40대까진 사업에 몰두했었다.

그러다 다시 운동을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

운동은 20대부터 꾸준히 했었다. DJ란 직업이 보기완 다르게 체력이 굉장히 필요하다. 부스에서 10시간~12시간을 쉬지 않고 했으니, 진행과 관련한 평생의 노하우가 그때 다 쌓였다. 하지만 체력적으론 ‘운동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원체 운동을 좋아하기도 했다.



운동이 좋아서 직접 피트니스 센터를 운영할 정도였으니 말 다한 거 아니겠나. 학창시절에도 여러 대표를 도맡을 정도로 운동을 좋아했다.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운동을 꾸준히 했다. 보디빌딩 대회는 2000년대까지 마스터즈 선수로 뛰었다.


▲ 제1회 남양주시장배 대회에서 사회자 임태송이 기획하고 진행한 프로포즈 이벤트는 선수들과 관중들의 뜨거운 반응을 끌어냈다. 사진=이일영 기자

제1회 남양주시장배대회에서 한 선수가 프로포즈를 한 깜짝 이벤트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사전에 기획됐다기 보단 즉흥적으로 진행한 거다. 대회 전날 준비를 위해 대회장에 갔는데 우연히 마주친 한 선수가 ‘저 결혼하게 될 것 같습니다’라고 얘기를 꺼내더라.

그래서?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게 도와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당일 선수 출전 명단을 확인해보니 마스터즈 소속에 나이도 조금 있어 보이더라. 그때 ‘아차’ 싶어서 먼저 초혼, 재혼 여부와 현재 결혼식을 올린 상태인지를 확인했다.

어떤 차이인가

프러포즈도 상황과 사람에 어울리는 이벤트가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프로포즈 선물로 건낼 것이 반지인 것을 확인한 이후 그걸 받고 선수 전화기까지 챙겼다.

왜?

조금만 더 들어보라. 이후 남양주 협회 임원을 한 명 섭외해서 해당 선수의 경기가 끝난 직후에 전화를 걸도록 사전에 준비를 시켰다. 그리고 즉석에서 마치 그 선수에게 항의할 것이 있는 것처럼 임원이 연기(이 임원은 ‘선수가 전날 마신 술값을 내지 않았으니 보호자를 무대에 부르라’는 연기를 훌륭하게 펼쳤다)를 해서 자연스럽게 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후 예비 신부를 무대에 올렸다.

처음에 어리둥절했던 관중들과 선수들도 나중엔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경기를 마친 선수 모두가 마치 제일처럼 함께 박수를 치고 축하해주는 장면이 감동적이었다.

(뿌듯한 표정으로) 예비 신부나 대회 주최측도 모르고 있었던 상황이라 깜짝 이벤트의 기획 의도가 살았던 것 같다. 선수들 역시 비록 힘이 들었겠지만 동업자의 입장에서 좋은 일을 함께 축하해주면 ‘그들에게도 좋은 추억으로 남지 않을까’란 생각에 그렇게 진행을 했다. 

이벤트 취지를 이해하고 프로포즈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때까지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 감동의 현장. 사진=이일영 기자

보디빌딩&피트니스 대회는 경연을 펼치는 스포츠의 현장이기도 하지만 팬과 함께 하는 ‘스포츠 이벤트’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기에 큰 의미로 다가왔다.

매번 피 튀는 경쟁을 펼치지만, 중간에 사람 냄새가 나는 그런 흐름이 들어가면 분위기가 새로워지지 않나. 다행히 많은 분이 전부 일어서서 볼 정도로 이벤트를 즐겁게 받아들여줘서 나 또한 보람이 있었다.

멋지게 프로포즈에 성공한 선수가 감사 인사라도 해야 할 것 같다

(머리를 긁적이며) 그래도 내가 마이크를 쥐고 있는 ‘시시한 공인’ 아니겠나. 괜한 오해를 사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생길 수 있어서 그런 건 마음만 받으려 한다. 대신 해당 장면을 찍어 준 이들이 있길래 그 사진을 선수께 드렸다.

그렇다면 많고 많은 분야 가운데 보디빌딩 전문 아나운서가 된 계기도 궁금하다

약 20년을 사업에 매달렸다. 그땐 욕심이 많다 보니 앞만 보고 달렸었다. 그러다 40대 후반에 내 인생의 뒷길을 돌아보니 가족과의 관계도 문제가 생기고, 여러모로 ‘이건 아니다’란 마음이 들어 모든 사업을 정리했다.



그리고 2008년 대회 출전을 끝으로 ‘선수 생활도 이제 원 없이 했다’는 느낌이 들더라. 또 지금은 많은 무대가 있지만 과거엔 나이가 들면 나설 수 있는 무대 자체도 한정적이었다. 거기서도 다시 한계를 느껴 선수론 은퇴 한 거다.

아쉬움이 남았겠다

‘이제 내가 보디빌딩&피트니스계에서 뭘 할 수 있을까’란 고민을 하다 보니 몇몇 분의 부탁으로 몇 차례 했던 사회자가 내게 ‘딱 어울리는 옷’이란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으로 사회자가 되면 'DJ와 선수를 했던 경험을 살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으로 보디빌딩전문사회란 길로 뛰어들게 됐다.

지금은 많은 보디빌딩 전문 사회자가 생겼지만 과거엔 그렇지 않았겠다

요즘 대회도 간혹 대회 진행이 원활하지 않아서 선수가 대기 중 경기 시간에 딱 맞춰서 오지 못할 때도 있지만 과거엔 그런 경우가 잦았다. 그 몇 분을 사회자 혼자서 채워서 하는거다. 그 시간 관객들이 지루할 틈이 없도록 사회, 경제, 정치, 스포츠, 연예 등 전반 이슈를 챙겨놨다가 말씀드리곤 한다.

?

올해 같은 경우엔 각종 동계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가 많지 않았나. 그 소식부터 국내 프로스포츠 리그, 해외축구, UFC, 미식축구 등 각종 인기 스포츠도 짧게나마 모니터링을 하는 편이다. 그 소식을 관객들과 공유한다. 그런 뉴스를 보고, 진행 소재를 연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어찌 보면 내가 편한거다.

이야기 소재를 얻는 것도 일이겠다

내가 원체 스포츠를 좋아해서 경기를 많이 보고 뉴스도 열심히 읽는다. 평상시에도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다가 머릿속에 들어오는 얘기가 있으면 휴대폰에 주요 키워드나 요점을 적어 둔다. 그리고 집에서 살을 붙여서 요약해뒀다가 사회를 볼 때 활용하곤 한다.

일반적으로 ‘보디빌딩대회’라면 접해보지 않은 이들에겐 우락부락한 근육의 이미지로만 오해할 수 있다

(웃으며) 기자님은 잘 아시지 않나. 피가 끓고 땀이 눈으로 보이는 경쟁이 펼쳐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막상 대회장에 오면 신나는 음악도 나오고 굉장히 재밌는 부분이 많다. 나 역시 즐거운 대회가 될 수 있도록 많이 연구하고 노력해서 ‘웃음과 감동이 있는 대회’가 될 수 있게 많이 이끄는 편이다.

분위기를 이끄는 것만큼이나 정보를 전달하고 대회를 진행하는 부분의 ‘보디빌딩 사회자’의 역할이 막중하다.

개별 종목별로 대기실에서 준비가 됐다는 사인을 준다. 그걸 동시에 확인을 하면서 진행을 한다. 그런데 멘트를 이미 시작한 경우엔 지나치게 길어지면 그 자체가 공해가 될 수 있다. 최대한 압축하면서 부드럽고 정확하게 전달 할 수 있도록 애쓴다. 기다리는 관중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면서 대회는 매끄럽게 진행되는 것을 동시에 유념해야 한다.


▲ 사진=이일영 기자

들어보면 보디빌딩 전문 사회자는 할 일이 정말 많아 보인다

말하지 않았나. 단순히 ‘몇 번 포즈’를 외치거나, ‘쿼터 턴’을 외치는 게 ‘사회자가 할 역할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나는 이 일을 굉장히 무섭게 받아들이고 있다.

무섭게?

내 지론에선 겁 없이 무대에 올라선 안 된다. 선수들과 함께 서는 무대는 신성한 곳이다. 일례로 어떤 사회자의 경우엔 앉아서 진행을 하는 경우도 있더라. 그게 땀 흘리며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을 대하는 사회자의 옳은 자세는 아닌 것 같다.



사회자가 비록 하루 종일 서서 진행을 하는 고통이 따르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웃으며 중심을 지켜야 한다. 그게 마이크를 쥔 사회자의 본분이고 선수들과 경기장에 온 관객들을 대하는 예의라고 믿는다. 긴장이나 흐름이 깨질 까봐 대회 중엔 점심 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준비해 온 간단한 간식들로 대체하기도 한다.

평소 화려한 복장과 액세서리 등을 즐겨 착용하는 이유도 궁금했다

어떤 이들은 ‘사회자가 연예인처럼 멋을 내느냐’라고 보실분도 있을거다. 그러나 그것 역시 좋은 분위기를 만들고, 즐거운 흐름을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해줬으면 한다. 가령 사회자가 표정이 어둡거나 인상을 찌푸리면 관중들도 그 분위기에 영향을 받게 된다. 내가 항상 표정 관리에 애쓰는 이유다. 

사회를 진행하기 위해 현장에서 하는 준비도 궁금하다

우선 대회장에 대부분 하루 전에 꼭 가는 편이다. 그래서 대회장의 오디오 앰프, 스피커, 마이크의 브랜드와 출력 상태 등을 체크한다.

브랜드는 왜인가?

음악감상실을 오래 운영했기 때문에 브랜드별로 '어떤 것은 중음이 좋고 고음이 나쁘고, 어떤 것은 저음이 좋지 않고'라는 식의 데이터가 있다. 브랜드 뿐만 아니라 넘버 시리즈에 따라서 소리의 질과 성향이 완전 다르다. 그래서 사전에 조율이 가능한 부분은 음향감독과 상의를 해서 조정하기도 한다.

프로답다

(겸손하게) 기본적인거다. 대회장마다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전용 마이크’도 항상 들고 다니는 편이다. 일부 대회장은 음향시설이 매우 열악하기도 하다.

마이크의  차이가 그렇게 큰가

‘쏘OO’ 와 ‘벤O’ 2000cc는 같은 엔진 출력이지만 실젠 확 다르지 않나(웃음). 그렇게 이해하면 될 것 같다. 디테일이 다르다. 조명도 마찬가지다.

조명?

음향만큼 신경을 많이 쓰는 게 조명이다. 실제 선수들에게도 매우 중요한데, 조명이 어떻게 비춰지느냐에 따라 판정도 영향을 받고 사진이나 영상의 퀄리티도 확연히 달라진다. 무대에서 늘 전체를 볼 수 있고, 또 10여 년 간 다양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최대한 ‘좋은 경기장’을 만들 수 있는 환경적인 측면에선 내가 할 수 있는 걸 먼저 찾아서 한다.

힘이 들고 때론 누군가에게 미움도 살수도 있는 일이다

그 때문에 일부 임원이나 이사들을 귀찮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대에서나 SNS에서 선수들이 환경적인 부분에 대해서 하는 얘기를 듣고 보기 때문에 작은 것도 그냥 넘어갈 수 없더라. 

주최 차원에서 많이 애를 쓰더라도 대회장을 임대하는 환경이라 조정이 안 되는 상황도 생긴다. 그땐 주최 측에 부탁 드려 선수 위치를 자주 바꿀 수 있게 하려 한다. 어두운 곳에 서 있던 선수들도 환한 빛에 서 보고 무대를 마쳐야 하지 않겠나.

그렇게까지 애쓰는 이유가 뭘까

선수들은 최선을 다 한 노력을 무대에서 원없이 풀고 가고, 관중들은 한 바탕 재밌게 즐기며 놀고 가는 것. 내가 생각하는 좋은 대회의 모습이다.

정말 좋은 지적이다. 깊이 공감한다. 어느덧 고령의 나이가 됐는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힘든 이 무대를 지키는 이유가 뭔가

예전에 선수로 뛰었던 시절의 트렁크를 아직 간직하고 있다. 바지가 다 헐어서(웃음) 레쟈로 된 소재의 트렁크도 있는데 그건 오일을 바르다 보니 겉은 다 벗겨지고, 고무줄이 낡아서 끊어지고 그런데(잠시 말을 멈추고)


▲ 항상 전용 마이크를 챙겨다니는 임태송 사회자. 사진=이일영 기자

?

거기 트렁크 얼룩덜룩한 자국에서 아직 탄 냄새가 난다. 그것들이 아직도 내 피를 뜨겁게 한다. 인생을 살면서 어려운 상황도 많이 겪었고 슬럼프를 경험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 탄 냄새를 맡으면서 ‘정말 보통 어려운 일 정도가 아닌 이렇게 힘든 일도 내가 했었다’는 걸 떠올리면서 ‘4일도 단수를 해봤는데 지금 어려움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고 다짐하곤 했다.

이 스포츠를 향한 애정, 무대를 향한 열정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것 같다

(흐뭇한 표정으로) 경기장에 도착하면 우선 기분이 정말 좋다. 이건 다른 구기종목과는 다르지 않나. 변수란 게 없다. 내 개인이 몸을 괴롭히고 노력하면 그만큼 결과를 가져다주는 이 운동이 정말 좋은 것 같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 그 진한 탄냄새를 맡으면, 저절로 힘이 솟는다. 나는 보디빌딩 대회장에 있는 순간이 가장 좋은 것 같다.

이렇게 건강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비결이 궁금하다

원체 운동을 좋아해서 학창시절부터 온갖 스포츠를 즐겼다. 지금도 선수 생활은 하지 않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술, 담배를 하지 않는다. 그랬더니 어딜 가도 나이보단 젊게 보더라.

앞으로의 계획도 듣고싶다

나보다 앞서 보디빌딩 사회를 했던 이보영 선배가 저보다 딱 10년 위의 나이인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엔 거의 사회를 맡지 않으시는 걸로 들었다. 우선 이보영 선배만큼, 그리고 가능하다면 10년 그 이상 더 열심히 해보고 싶다.


사진=이일영 기자

나이에 한계가 어디 있나.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 전설적인 해설자인 빈 스컬리는 만 91세가 된 올해까지 67년간 중계를 했다

한국에는 송해 선생님(91)도 계시고.

대중에게 목소리가 각인된 이들의 경우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 주길 기대하는 이가 많다. 그것 자체가 어떨 땐 선물처럼 느껴지곤 한다

미국에도 유명 링아나운서가 있다. 그는 대회의 아주 짧은 순간의 사회를 맡는다. 하지만 그 사람이 마이크를 잡는 순간 대회장의 공기가 바뀐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거다. 나 역시 언제까지 사회를 할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런 좋은 이미지를 간직한 채로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다. 다행히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으신만큼 자부심을 가지고 몸을 단정히 하겠다.



또 오래도록 이 업계의 많은 분께, 관중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성실하게 노력하겠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무대에 오르겠다. 

그동안 무대에 설 수 있게 정말 도움 주신 분들이 많다. 그 고마움을 잠깐 언급해도 될까.

물론이다

보디빌딩계 선,후배 분들이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항상 많은 도움을 주고 지지해준다. 그들 이름을 다 호명하진 못하겠지만 항상 정말 감사드린다. 또 무엇보다 가족들에게 참 고맙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이 계통에 발을 들이면서 가족들이 인내하고 이해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그 힘들었을 순간을 말로 표현하지 않지만 충분히 그랬을 거다. 지금은 건강하고 행복하게 내가 이 일을 하는 걸 응원해주는 가족들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많다.

당신의 목소리만 들으면 보디빌딩 대회가 시작됐다는 걸 느낄 수 있게 오랫동안 이곳을 지켜주길 기대하겠다

그렇게만 된다면 더 젊어지지 않겠나(웃음). 앞으로도 흐트러지지 않고 선수와 팬, 이 스포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사회자가 될 것을 약속드린다. 

이 업계도 선수들을 위한 대회가 더 많이 열렸으면 한다. 팬 역시 몇 차례 대회장을 방문하면 다들 ‘전문가’가 된다. 국제대회나 해외 선수도 영상매체 발달로 쉽게 접할 수 있어 팬의 눈높이는 더 올라가 있다. 그걸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대회 주최나 선수들 모두에게 필요할 것이다.



팬을 존중하고 위하고 배려하는 보디빌딩&피트니스 대회가 됐으면 한다. 팬이 없다면 대회를 뭐하러 하겠나? 또 그 스포츠가 존재할 수 있나? 팬들과 선수가 즐겁고 행복할 수 있는 장소가 되고, 문화가 조성될 수 있게 미약한 내 힘을 보태겠다.

마지막으로 사실 가장 궁금했던 질문이다. 포즈 다운~다운~다운 하는 그 에코는 어떻게 내는 건가

(지긋이 미소를 짓다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며) 포즈 다운~다운~다운. 이렇게. 어떤 분들은 기계로 하는 줄 아는데 직접 입으로 내는 소리다. 관중들이 지루해하지 않도록, 호응을 유도하기 위해서 고안했다. 보통 비교심사가 많이 열리는 오후 일반부 경기에만 하는 편인데, 요즘엔 트레이드마크가 돼서 가끔 영상에 소리가 잡히게 따로 요청하는 선수도 있다(웃음).

어떤 사회자로 남고 싶은가

팝의 황제 故 마이클 잭슨이 예전에 ‘비트가 혈관을 타고 들어와서 노래를 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야말로 혼을 바쳐서 노래 한 것이 아닌가. 나 역시 그렇게 무대에 서겠다. 절대 초심 잃지 않고 말이다.

누군가에게 존경을 받길 원하진 않지만 최소한 존중을 받는 그런 사회자의 모습으로, 반가운 목소리로 남고 싶다.


▲ 임태송 사회자가 빈 스컬리처럼, 송해처럼 오랜 기간 변치 않는 목소리로 팬들을 만나길 응원한다. 사진=이일영 기자

김원익 기자(one.2@foodnamoo.com)
김원익기자(one.2@foodnam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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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8-12-07 16:2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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