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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스토리] '인간승리' 장광록 "발목 관절 없어도 할 수 있어요."
개근질닷컴| 등록2018-09-17 16:48| 수정2018-09-20 16:35 facebook twitter

  

▲ 제48회 MR.YMCA 마스터즈 50~59세 체급에 출전한 장광록(54)은 '걸을 수 없는 정도'의 장애를 극복하고 두 번째로 보디빌딩 대회 무대에 올랐다. 사진=이일영 PD

[개근질닷컴] 한창 건강한 30대. 갑작스러운 사고로 걷지 못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때도 과연 '신은 극복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준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제48회 MR.YMCA’ 마스터즈 50~59세 체급에 출전한 (주)현대로템 헬스동호회의 장광록은 신을 원망하는 대신 갓난아기처럼 바닥에서 일어서는 것 부터 시작했다.

발목이 부러지고 관절이 모두 파열돼 절단 진단을 받을 정도의 치명적인 사고. 하지만 장광록은 천천히 지면에 한 발을 내딛었고 이어 걷게 됐다. 그리고 보디빌딩까지 시작한 그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나를 살게 한 운동'인 보디빌딩. 장광록은 이젠 선수로 다음 단계에 도전한다. '인간 승리' 장광록의 휴먼스토리를 들어봤다.

 

"한 때는 자살까지 생각했습니다." 운동으로 절망에서 벗어난 남자


▲ 지금도 선명하게 남은 당시의 끔찍했던 사고의 흔적. 사진=김원익 기자

장광록은 4위로 경기를 마쳤다.

순위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 숫자는 중요하지 않았다. 수많은 관중에게 그 이상의 깊은 감동을 준 건 불편한 몸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의 모습이었다.

또한 장년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훌륭한 근질을 보여준 그의 모습에 많은 이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경기를 마친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굉장히 기쁩니다. 사실 제가 20년 전 당한 사고로 왼쪽 발목 관절이 거의 없거든요. 당시 왼쪽 발목 부터 종아리까지 비장근 왼쪽과 오른쪽을 20cm 정도 절개해서 사고로 괴사한 관절, 근육, 신경을 다 긁어냈어요.

불편한 기색은 느꼈지만 그만큼 부상이 심했을 줄은 몰랐습니다.

사실 제대로 걷게 되기까지 6년 정도 걸렸는데 너무 통증이 심해서 자살을 시도할 생각도 했습니다. 사고 직후엔 하체가 팔뚝보다 더 적을 정도로 쪼그라들었는데, (다리를 가리키며) 이렇게 돌려놨어요. 최근에 또 부상을 당해서 25kg 정도 체중이 불었었는데 복귀도 했습니다. 무대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참 만족스럽고 기쁩니다.

정말 '인간승리'라고 밖에 할 말이 없을 정도로 대단한 몸입니다.

다치고 나서 발목 운동을 매일 2000~4000개 정도 했어요. 스쿼트도 가볍게 20~30개 정도 했는데, 그땐 정말 눈물을 줄줄 흘렸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죠. 속된 말로 까무러치는 정도로 아팠습니다. 막상 차근차근 운동을 해보니 '몸은 정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습니다. 장애가 있는 분들도 운동 하면 무조건 돌아옵니다. 신은 노력하는 사람을 결국 예전으로 되돌려주더라고요. 

 


▲ 최선을 다 한 경기를 펼치고 있는 장광록. 사진=이일영 PD

정확한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1964년생인데, 아버지가 66년생으로 출생신고를 했어요. 실제론 올해로 55살 용띠입니다.

대단합니다. 그럼 젊었을 적엔 운동을 많이 했었나요

네 그런 편이죠. 제 입으로 말하긴 좀 쑥스럽지만, 만능 스포츠맨이었어요. 지금 이 다리로도 배구, 배드민턴, 수영을 다 하고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씨름도 하셨고 장사였어요. 96세에 돌아가셨는데, 건강한 건 집안 내력이었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닮은거죠. 그래서 거동을 못 하는 장애를 가지게 된 걸 더 받아들일 수 없었어요.

아픈 상처겠지만, 사고 과정을 들을 수 있을까요

20년 전 당시 회사 설비 팀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천장 배관이 파열돼서 그걸 고치다가 6m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어요. 산재 사고인 셈이죠. 시멘트 바닥에 떨어져 한쪽 발이 지면에 닿았고, 그 하중에 발목이 완전히 부러지고 인대나 힘줄이 다 끊어졌어요. 왼쪽 발목 골절 및 관절 전체 파손 및 복합골절로 장애 4급 판정이 나왔는데, '발목이 완전히 절단 돼야 3급 판정이 난다'고. 당시엔 다신 제대로 못 걸을 거란 얘기도 들었어요. 

 


▲ 한 때 나쁜 마음을 먹었었지만 이젠 장애를 극복한 용기를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다. 20년 전 사고 당시 모습. 사진=장광록 제공


정말 심각한 부상이었네요

사실 처음 실려갔던 병원에선 '발목을 자르자'고 권유했어요. 재활해도 기능이 돌아올 가능성이 없다고. 오히려 지금 현상태로 놔두면 다리 전체 근육이 다 괴사할 수 있다고요. 그럴 순 없어서 부산대학교 병원에 갔더니 '발을 살리려면 절개를 한 번 해보자'고 권유해서 받아들였죠.

회복 과정이 특히 힘들었겠습니다

완전히 죽어버린 관절, 신경 조직, 피부와 근육을 다 긁어내는데 딱 한 달 반이 걸렸습니다. 통증이 이루 말할 수 없었어요. 밤엔 한숨도 못 잤어요. 그렇게 잘 회복이 돼도 정상인처럼 거동을 못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렇게 살아서 뭐 하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거기서 깜빡 정신을 놔버렸어요.

?

병원 화장실에서 환자복을 묶어서 목을 맸어요. 그러다 운 좋게 회진을 돌던 의사에게 발견됐습니다. 조금만 더 늦었으면 힘들었을거라고...

음.

그 이후엔 기억 나지 않지만. 중환자실에서 10일 정도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있었다고. 나중에 들었어요. 기적적으로 살아나니까 아내와 애들, 부모님 생각에 참. 제 행동이 너무 후회됐죠. 그때 한창 어머님과 아내가 교회에서 저를 위해 새벽 기도를 하고 있을 때였거든요(눈물).

아...

의식을 어렵게 되찾고 나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데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졌어요. 그렇게 '다시 살아야겠다. 재활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겁니다.

저도 아버지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가족들이 정말 고생했겠네요.

다들 그랬지만 특히 아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죠(눈물). 절 정말 헌신적으로 챙겨줬어요. 다시 운동을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수십년간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서 매일 도시락을 챙겨주는 사람이니까요. 의식이 없을 때도 아내는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의사가 "남편이 살아나도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는데 아내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당시엔 제가 모셨거든요. 마음고생을 참 많이 했어요(다시 눈물).

살기 위해 시작한 운동은 삶이란 선물을 줬다


▲ 2번째 부상으로 110kg 까지 불어난 체중을 25kg 이상 감량하고 대회에 나선 불굴의 사나이. 사진=장광록 제공


재활 과정도 불굴의 의지가 없인 어려웠겠습니다

재활하는 게 그래요.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고 걷는 과정과 똑같았어요. 수술하고 첫 2년은 바닥에 발을 딛지도 못했으니까요. 6년을 통째로 재활만 한겁니다. 몸에 근육이 다 빠져나가더라고요. 처음엔 바닥을 기어다니고, 그 다음엔 일어서고, 그리고 천천히 걷고, 맨손 운동을 시작했죠. 그러고 나서 천천히 수영을 하고 나중엔 보디빌딩까지 하게 됐습니다.

재활 이후 많은 운동 가운데, 보디빌딩을 한 이유가 있었나요

몸이 비쩍 마르더라고요. 단백질은 신체 행위를 해야 저장이 되잖아요. 모든 운동의 기본이 근육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고요. 살기 위해서 선택했어요. 천천히 대회 출전을 준비했고, 나중에 생활지도자 3급 자격증도 취득했습니다. 지금은 배구 심판 자격증도 가지고 있죠.

첫 보디빌딩 대회 출전 얘기를 듣고 싶습니다

하체를 움직일 수 있게 되면서 한 2년간 전력으로 준비해 나간 첫 대회가 '2007년 전국춘계 보디빌딩대회'였어요. 거기서 장년부 3등을 한 번 했습니다. 그리곤 이 대회 전까진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그럼 거의 11년만에 다시 보디빌딩 대회에 출전한건데요

그동안은 취미로만 계속 운동을 했죠. 그러다 2년 전에 십자인대가 파열돼서 체중이 110kg까지 불었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와 혈압이 높고, 각종 합병증도 생기니까 '이러다 다시 죽겠구나'란 생각이 들었죠. 그래 아내에게 염치 불구하고 또 부탁을 했어요.

뭐라고요?

'도시락 좀 싸도'라고요. 아내가 부모님을 25년간 모셨거든요. (떨리는 목소리로 한참 말문을 잇지 못하다가) 아내가 없었으면 정말 전 이 자리에 설 수도 없었을 거예요. 

 


▲ 무대에서 당당했던 장광록(왼쪽)은 꽃 같은 아내 이현정(오른쪽)씨 를 떠올리며 눈물을 감추지 못 했다. 사진=장광록 제공


마음을 한 번 전해 보는 건 어떨까요

아내 이름이 이현정인데요. 원래 배구 선수 출신이에요. 그래서 더 많이 이해해주고, 격려해주고, 우울증에 빠져 있었을 때도 저를 일으켜줬어요. 여보, 당신 덕분에 내가 새 삶을 사는 거야.

30대, 40대, 그리고 50대에 하는 운동이 다 다르죠

이번엔 체중을 감량하는 게 진짜 힘들었어요. 110kg에서 지금 86kg 정도까지 뺐는데, 젊었을 때랑 또 다르데예(웃음). 물론 커팅이 완벽히 된 건 아닙니다. 살만 안 쪘었다면 더 좋은 몸으로 나올 수 있었는데 그건 아쉽죠.

한쪽 발목에 제대로 힘이 안 들어간다는 건 일반인에게도 엄청난 약점이죠. 또 극복하기 힘든 벽처럼도 느껴집니다.

아니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럴수록 하체 운동을 더 독하게 했어요. 죽어도 사고난 이 발목은 키울 수 없으니까. 대신 다른 하체 운동을 더 많이 했습니다. 안 했을 땐 다른 근육들도 다 죽었어요. '그래 (발목에다 대고) 니는 아파뿌라, 나는 다른 쪽 더 하께'하는 마음으로 했는데.

했는데?

아픈 발목까지 옛날보다 더 좋아졌습니다(미소).



▲ 장광록은 'Back Double Biceps' 규정 포즈를 취할 때 다른 선수처럼 하체에 온 힘을 넣지 못 한다. 하지만 장애는 결코 그를 넘어뜨릴 순 없었다. 사진=이일영 PD


'몸은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럼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게 이 운동이에요. '육체의 기적은 노력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혹시 다른 많은 분도 아프다고 해서 절대 포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기자님! 원래 근육도 아파야만 발달 되지 않습니까.

그렇죠

극복(克服). 결국 그거 같아요. 제가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면서 배운 것이 있어요. 우리가 살면서 저축을 하잖아요. 우리 몸에도, 그리고 건강에도 저축을 해야합니다. 건강을 잃고 나면 회복하는데 정말 많은 돈이 들지 않습니까.

그럼 다음 목표는 뭔가요

지금 몸은 다른 선수들보다 뛰어나지 않지만, 조금씩 좋아지는 걸 제가 느끼고 있어요. 여기서 몸을 더 잘 만들어서 내년 'Mr.Korea 대회 장년부'에 한 번 출전해 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개근질닷컴' 독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건강에 하루에 한 시간만 투자하세요. 저를 보라니까요.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 '인간승리' 장광록 선수가 개근질닷컴에 보낸 자필 편지. 그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사진=장광록 제공


김원익 기자 (one.2@foodnam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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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2018-09-17 16: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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